(책 리뷰)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2021.04.04 ~ 2021.04.04, 2021.04.04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 ‘하는 것’ 이다.

여러 철학/인문/교양/자기계발 책을 읽었었다. 열심히 읽고, 정리했지만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지는 못했다. 아쉽다. 또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는 이 책처럼 살아야지, 난 누구처럼 살아야지’ 같이 생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편협됐다고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이때까지 읽었던 책의 저자는 여러 사람이고 각자 살아온 시대, 환경이 다른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드리려고 하다니, 안일했다.

철학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 철학적 이론이 생긴 배경을 이해하고, 같은 시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고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나만의 시선과 생각을 정립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철학적 이론은 그 과정에서 생각의 깊이를 만들고, 다른 여러 생각을 느끼게 도와준다.

‘철학적’은 지성적인 차원에서 가장 높은 시선이다.

분명히 생각에는 단계가 존재한다. 책에서는 피아니스트, 음악가, 예술가 를 예를들었다. 한 분야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단의 경계가 넓어지며 자신의 생각을 더욱 깊고, 넓게 전달한다.

나도 해당사례를 가지고 있다.

  1. 분야 있어서 당장 무엇을 하는 것이 최선일까?
  2. 궁극적으로 분야의 끝에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 걸까?
  3. 과연 분야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하는 걸까?
  4. 자아실현, 사회적 관계, 사랑에서 어떤점에서 나는 행복이란 것을 느끼는가?
  5. 삶이 무엇인가?

고스란히 위 질문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진짜 난 뭘하고 싶다는 거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결론은 모르겠다지만 말이다. 답을 내리기엔 난 아직 서투르고, 어렵다. 가까운 질문부터 해답을 내보고, 노력했다.

읽으며, 책들을 읽고 받아들이는 점을 다시금 새로고침하게 됐다.

배경과 시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다른 시각으로 책을 읽는 눈이 생겼다. 다시금 “왜?” 라는 질문이 얼마나 어렵고, 지금 삶이 소극적인지 돌아보았다. 관계에서 나는 참여자가 되기보다, 방관자로 일관했다. 친구/직장/사회/국가에서 말이다. ‘나랑은 관계없어’, ‘나만 잘하면 돼’ 라는 생각이 정말 안일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언제나 집단과 사회속에 속해있다. 이런 태도로 일관할수록, 나만 살아남는 것 이 아닌 나와 나의 관계를 좀먹고 있었다.

‘나’ 부터 시작해서, 변화하고 관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은 나를 바꾸는 것이고, 나의 사회가 발전하고 윤택해지는 길이다.

위의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떻게 말해야 될지 좀 난감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나의 능력부족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의 근거가 훨씬 단단하다면, 가능하다. 나의 네트워크를 이끄는 과정에서 불화가 있는 것은 당연할 예정이다. 그리고 더 높은 능력치가 요구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것들이 충족되면 당연스럽게 결과는 따라올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전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공유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