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2021.03.21 ~ 2021.03.22, 2021.03.22

책을 다 읽고, 헤밍웨이가 남긴 “노인은 노인, 바다는 바다”라는 말을 봤다. 노인은 그저 어부다. 아마 일평생을 어업에 쏟은 노인의 이라고도 할 수있다. 노인은 84일 동안 아무런 고기도 잡지 못했다. 슬럼프에 빠졌다고도 할 수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 포기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노인’이기에 남은 시간은 그에게 의미가 크지 않아서 그냥 하루하루 이미 배를 끌고 바다에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된지 오래다. 그리고 기회를 마주했다.

그를 잡을 기회가 왔을 때 생각에 너무나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때 노인은 그를 재화로만 봤었다. 소년이 있었다면 훨씬 편하게 잡았을 텐데 하는 어느 순간 그는 마음을 바꿨다. 아마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고, 어부라는 직업을 더 할지말지 고민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때 아마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떠올렸을 것이다. 아마 더 이상의 나에게 이런 기회는 없을 것 이란 것. 일평생 이만큼 큰 생선을 못잡을 것이란 점과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 말이다.

마지막을 겸허히 도전하기로 했다. 그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낚시줄에 손을 엉망징창으로 만들고, 남은 손으로 어떻게든 버텼다. 그때부터 노인은 그를 단순한 생선이 아닌, 자신, 어부, 을 대입했다. 일평생을 바쳐온만큼 노인 자신의 상태와 그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를 잡고, 도전을 끝마친 다음에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상어떼가 그를 잡아먹는다. 이미 그 미래를 알고있었을 수도 있다. 사람으로서 자신이 얻어낸 보상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던 것도, 사투를 벌이는 것도,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도 노인이 살아왔던 삶을 반영한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에서 노인은 바다의 사냥꾼이 아니라 바다의 한 일원일 뿐. 돈을 생각했던 점, 아쉬움이 보이는 점, 또 노인이 어렸을 때, 소년이었을 때, 청년이었을 때, 중년이었을 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성격이었든지 간에 산업화된 사회에서 그는 그저 노인이다. 집에 돌아와서 별다른 표현없이 피곤에 쓰러져 잠든다. 소년이 그 결과를 보고 울분을 토해내며 노인을 찾아온다. 하지만 노인은 그저 나갔던 동안 못봤던 신문을 달라고한다. 너무나 지친 날들이었고, 지나갔을 뿐이다.

그저 어부인 노인이 엄청나게 큰 생선을 잡는다는 사건을 아주 절제적으로 표현한 것이, 노인을 독자의 생각에 맡긴 다는 점이 정말정말 인상적이다. 이 절제가 독자 개개인의 노년을 대입해보게 아주 적절하게 조절되었다. 제목처럼 말이다. 물론 작가는 그런 의미로 안썼을 수도 있다.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평소였다면 책을 읽고나서 인물의 행동과 각각의 사건을 나에 대입해서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독자의 입장에서 다음에 나도 몇개월 뒤 몇년뒤 이 독후감을 읽었을 때 사색과 감상에 빠질 수 있도록 절제해서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