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루빈의 책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의 감상 리뷰입니다.
창조란
창조는 특정한 직업이나 결과물의 이름이 아니라, 행동을 의식하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행위다.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글로 옮기거나 게임, 노래, 물체 등등으로 만들면 인상이 생각으로 바뀌고, 완성되면, 세상에 나오며 창조물로 표현된다.
창작은 인간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당연시하는 행동들도 창작이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현대미술처럼 이것을 내가 ‘의식’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창조적 행위》는 ‘창작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라기보다, 창작의 힘과 시야를 가지게 해주는 책이다. 단순히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힘과 태도를 가지게 해주는, 근본을 건드리는 좋은 책이다.
실행
개인 프로젝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작게 하나씩 언제 다하지?’ 라는 막막함이 생겨 한번에 완벽하게 갈려고 했다. 오히려 이것이 발목을 잡았다. 애초에 빨리 끝낼 수가 없는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 “조급함”과 “완벽주의”에 압도당해 일의 큰 덩어리를 한번에 할 수 없기에,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다. 나의 생각의 발현되는 창조적 행위를 하는 순간을 즐겨야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시작하자”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이 과정을 즐긴다면 아무리 먼 길이여도 거뜬하다.
받아들임
릭 루빈은 아이디어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창조물이며, 그 안에는 저마다 아름다움이 있다. 창조의 씨앗을 담아두고, 스쳐 지나가는 영감을 놓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고 돌아봤을 때 곁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받아들임이 중요했던 이유는 결국 창조의 실마리가 되기 위함이다. 영감을 창조로 변환하는 것 이다. 자신만의 방식의 정답은 없지만, 나의 경우에는 특히 깊이 고심하면서 생각을 거듭하며 글로 써내려 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창작물을 만들어냈거나 만드는 중이라면 창작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증명했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않다고 느껴서 “창작자다!”라고 단언하기는 부끄럽다. 만들어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그 이름을 붙이기에는 결과물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창작하는 삶으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어떤 풍경을 보고 ‘좋다’, ‘아름답다’ 느끼는 데서 멈췄다면, 이제는 왜 아름다운지, 무엇이 그 아름다움을 이루는지 살피려고 한다. 잘 보고 듣는 것, 깊게 그리고 유심히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감상보다 체험의 위상을 잡아내려 했다. 감상을 소비하는 대신, 체험의 구체적인 결을 붙잡으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