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호프》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의 감상 리뷰입니다. 작은 스포를 당한 채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SF로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저는 “사람들이 SF를 기대했더니 실망했다.”라는 사실을 알고 관람했기 때문에 오해 없이 봤습니다.


액션과 강약 조절

말을 타고 도와주러 온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괴물에게 잡아먹혀 하체만 덩그러니 말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잔혹함 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기묘한 어이없음이었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뜬금 없는 개그와 아름다운 영상미로 관객들을 가지고 놀았다.

계속 긴장만 이어졌다면 2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피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액션 구도의 전환으로 괴물을 추격하다가 이후에는 반대로 쫓기는 입장이 된다. 이후에는 말, 자동차를 활용환 추격씬으로 바뀐다. 각 구도 안에서도 시점 전환을 분위기 환기로 사용한다. 사촌, 다른 경찰들, 외계 생명체 등등 개그와 함께 피로감을 제한한다.

특히 짧은 장면 전환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한 인물에게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질 즈음 다른 인물이나 상황으로 시선을 돌리고, 다시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강약 조절 테크닉이 최고였다.

불필요한 장르 문법을 과감히 버린 영화

장르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설명이나 클리셰를 상당히 과감하게 생략했다. 보통은 이야기의 개연성을 위해 인물들이 상황을 설명하거나, 관계를 정리하거나, 사건의 의미를 확인하는 장면들이 들어간다. 하지만 《호프》는 그런 순간조차 대사를 이용해 농담처럼 처리한다.

관객에게 “지금 그런 게 중요한가?” 라고 묻는 느낌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시간을 다시 액션과 긴장감에 투자한다. 원래 장르 영화에서 최소한의 타당성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던 설명 장면들을 과감하게 쳐내면서 흐름을 유지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다 있으나마나 한 장면들이다. 그럼에도 과감한 도전이다.

카메라가 만드는 속도와 긴장

특히 카메라의 움직임과 시점 활용이 좋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1인칭에 가까운 시점을 사용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반대로 시선을 따라간다. 지능을 가진 포식자라는 점도 연출을 통해 드러난다. 숲속 나무 위에 숨어 사냥감을 기다리거나, 인간의 움직임을 판단하면서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괴물 자체에 일종의 지성을 부여한다.

추격 장면에서는 카메라를 멀리 빼기도 하고, 회전과 패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로우앵글과 아슬아슬한 거리감으로 속도와 긴장을 극대화 한다.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히는 식의 장면에서도 단순한 움직임 이상의 실제로 위험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이 살아난다.

인간의 무력함, 그리고 그 안에서의 선택

영화의 메시지는 액션을 받쳐주는 배경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나홍진 감독의 작품에서 느껴졌던 정서는 여기에서도 보인다. 인간은 무력하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나 힘이 운명을 좌우한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그 상황을 통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 모습에는 분명 아름다움이 있다. 다만 그 메시지를 깊게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메시지는 액션과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정도이고, 영화의 중심은 끝까지 장르적 재미와 액션이다.

추천한다면

일관된 서사나 깊은 메시지, 정교한 설명을 기대한다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머리를 비우고 순수한 장르적 재미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잘 맞을 것 같다. 긴 러닝타임 동안 서로 다른 액션을 끊임없이 변주하면서도 관객을 지치게 하지 않는 힘이다. 나는 최고로 재밌게 본 액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