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달과 6펜스를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예술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만든 책. 읽으면서 한창 “개발”자체와 배움이 즐겁던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회적 인정과 안정을 가진 지금 달을 바라보던 나는 흐려지고 고개를 내리 깔았다. 달을 갈망하던 때는 언제였을까. 밤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꾼지는 오래다. 이런저런 이유와 현실을 도피삼아 바닥을 바라보며 걸었다. 이미 땅을 바라보며 걷지 않아도 됨에도 말이다.
달
모두가 달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에 있을까? 특별한 하늘인 걸까? 작가는 아니라고 하는 것 같다. “달”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저 밤 하늘에 고개를 들면 보인다. 언제까지 땅바닥만 보고 살거야? 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비록 헤매도 “그냥 해”라고; 책을 읽으면 스트릭랜드처럼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오판을 할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책 내내 명예와 인정욕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달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멋지기 때문”이 아니라, 순수히 달을 아름답게 여길 뿐이다. 내가 하는 행위의 결과가 남들의 인정을 기대하기보다 나를 위해 한다. 한창 인정 욕구에 매마르던 때를 떠올렸다. 안주는 안되기에, 누구보다 6펜스를 바라보면서도 달을 쫓고 있다고 되뇌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했다. 과정이 힘듦에 집중하기보다 스스로 발전하는 나를 보며 달을 쫓는다며 착각도 했다(발전의 기준도 내가 아니었다).
6펜스
6펜스는 그 당시로는 아주 큰돈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쓰던 돈이다. 평범한 현실적 가치다. 스트릭랜드는 중산층 은행원으로서 앞으로의 여생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흘러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작고 속물적인 가치에 목이 메인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 아내는 가정의 체면, 초대한 사람들의 지위에서 본인의 지위를 인정받고 싶어했다.
- 스트로브는 예술의 가치를 타인으로부터 얻고 탐구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채 부러워만 했다.
- 아내에 말에 휘둘린 중산층들은 빛나는 스트릭랜드를 보지 못하고, 소문과 가십거리에 휘둘려 영혼을 잃은 듯 했다.
- 예술 시장과 비평가들은 오히려 사후에 스트릭랜드를 찬양하며, 돈과 명예로부터 인정을 만들고 그 인정을 다시 인정하는 듯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상속 가치를 쫓는 것 같았다.
공존
그럼에도 예술을 추구하는 인간이 사회와 평화롭게 공존을 할 수 있을까?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돈으로 환산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예술만으로 인간답게 살수있지 않다는 것도 당연하다. 달을 쫓는 행위에 돈이 엮이게 되면 순수함이 더럽혀진다. 그래서 돈을 받으면 즐거워 하던 것도 싫증이 난다고 하던가.
하늘을 보던 예전과 땅만 바라보며 한숨 쉬는 현재는 부딪혔다. 나도 스트릭랜드처럼 살아야할까? 지금의 나는 예전과 같진 않지만, 더 안정적이며 여유롭다. 든든한 사람이 곁에 있는 지금은 마음 편히 달을 꿈 꿀 수 있다. 땅에서 동전을 찾던 때를 홀가분하게 고개를 들 때가 됐다.